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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구덕도서관

by 바쁜하루 2019. 8. 25.



처음 구덕도서관에 갔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이었지 싶다. 친한 친구를 따라 아침 일찍 가서 공부는 1시간도 안 하고 장난치고 놀다가 점심 때 우동 한 그릇 사 먹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오는 길에 오락실에 들러 슈팅게임 한 판 하는 것은 필수!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먼 도서관까지 다녀 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여행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 기간이면 거의 어김없이 일요일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 꼬박 하루종일 있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혼자 가는 경우보다는 친한 친구 한 두 명과 함께 갔던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고등학교 뒷편에 있던 당시 새로 생겼던 중앙도서관도 자주 가긴 했지만 구덕도서관이 면학분위기가 더 좋았으므로 여유가 있는 방학 때는 집에서 먼 구덕도서관을 더 자주 찾곤 했다.
지금도 친한 J는 당시 함께 자주 갔었고, 최근 연락이 뜸한 Y도 종종 그곳에서 보곤 했다. 점심 식후에 100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언젠가 펼쳐질 장미빛 청춘과 자유로운 대학생활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구덕산의 가을을 8번쯤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론 거의 가볼 일이 없다가 대학시절엔 이따금 J나 Y와 함께 새우깡에 소주 한 병 들고서 젊은 청승을 부리며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지도 어느덧 20년쯤 되었고...

오늘 우연히 볼 일이 있어 이 동네에 왔다가 문득 생각이 나 도서관에 들렀는데, 상전벽해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렸다. 누르스름하던 건물 자체가 리노베이션되어 세련되고 깨끗해졌다. 고시원 분위기의 남녀열람실은 없어지고 깨끗한 서가에 최신 서적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산비탈과 벤취가 있던 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해 자가용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고 300원 짜리 우동을 팔던 지하식당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며칠전 생전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시간은 흐르고 벗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날 반겨줄 것 같던 구덕도서관마저 낯선 사람처럼 변해버려 내심 서운하기 짝이 없다.
결국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구름같은 것인가?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 최희준의 ‘하숙생’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