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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달리기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이다. 49년 생인 하루키가 2007년, 만 58세에 발간했으니 거의 회갑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철학을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하루키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수필집을 기대하고 펼쳤지만 시종일관 진지하고 담담하게 인생과 가치관을 얘기해서 약간은 실망했다. 하지만 평생을 글로 먹고 살아온 작가답게 글 속에 힘이 있어서 단 이틀 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큰 감동을 주는 글은 아니었지만 작가가 정말로 솔직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읽으며 마음에 들어 밑줄 쳤던 부분들 옮겨본다. 나는 샐러리맨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여서, 장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아내는 상인의 집에서 태어난 덕에 타고난 직감 같은 것이 있어 무척 도움이.. 2026. 10. 25.
Mood blindness 사람의 망막에는 색을 감지하는 세포, 일명 원추세포라고 하는 것이 세 종류 있다. 각각 적색, 녹색, 청색을 감지한다. 빛이 망막에 닿는 순간 각각의 세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사람은 다양한 색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빛이 적색과 청색의 세포를 자극하면 보라색을 인식하고, 빛이 적색과 녹색 원추세포를 자극하면 노란색으로 인식한다. 색맹(Color blindness)은 원추세포 중 한 종류 이상이 제 기능을 못할 때 나타는 증상인데, 제일 흔한 것은 녹색 원추세포의 이상이고 이 때는 녹색 계통의 색을 적색 또는 청색과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녹색과 청색 원추세포에 동시에 이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이 온통 붉은색으로만 보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정서 상태가 무척 무미건조해졌다고.. 2026. 10. 19.
소슬바람 불면 가슴 한 켠 시린 소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달리기를 했던 순간이 불현듯 떠오른다. 요즘에는 가을 운동회를 하는지 모르겠다. 수학여행도 없어지고 소풍도 없어지는 시대라 운동회도 없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그렇게 하나 둘 없어지고 나면 학창 시절에 뭐가 추억으로 남을지 안타깝기도 하다.6명이 달리면 3등까지만 상을 줬는데 나는 언제나 3등 아니면 4등이라 매번 뛰기 전에 긴장했다. 3등을 해서 공책 한 권이라도 받으면 그날은 하루 종일 의기양양했지만 4등을 해서 빈손이 되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럴 때는 한껏 풀이 죽어 있다가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 도시락을 먹으면 기운이 좀 났다. 매스게임은 운동회가 있기 몇 주 전부터 체육시간마다 연습했다. 어떤 해는 인간 피라미드를 쌓았다가 “와”.. 2026. 10. 18.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 처음 체호프의 단편집을 읽었을 때는 왜 그가 단편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헨리처럼 멋진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피츠제럴드처럼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뭔가 어두침침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글도 많았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 같지도 않은데 슬그머니 끝나버리는 작품들도 많아서 "뭐야. 이거. 이대로 끝난 건가?" 하며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었다. 다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는 작품만큼은 그 어정쩡한 마무리(?)가 무척이나 깊고 큰 여운을 남겨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구로프라는 바람둥이 남자가 얄타라는 해변 휴양지에서 젊은 부인과 사랑을 나눈다. 몇 주간 연인 관계로 지내다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남자는 그 여자를 쉽게 잊을 거라 생각한다.. 2026.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