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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술주정 아내와 아들이 서울에 놀러 갔다. 그래서 혼자 이틀간 집을 지키게 되었다. 퇴근 후에 집에 오자마자 놀아 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집안일을 도와 달라는 아내도 없으니 오롯이 내 시간이었다. 냉장고에 있던 식은 피자를 데우고 남은 와인을 열었다. 오디오에 재즈 음악을 틀고 잔을 홀짝이다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없이 혼자라는 것. 반 병 정도 남아있던 와인을 다 마시고도 아쉬워 위스키를 꺼냈다. 신데렐라의 마법에서 깨어나기 아쉬운 까닭이었다. 지나간 세월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멀리 걸어온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덧 벌써 20년 혹은 30년 전… 혹은 35년 전… 내 인생의 봄날이 이젠 정말 까마득히 멀리 있음을 실감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동안 지금도 내.. 2025. 1. 16.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스 1편에서 소개된 책이다. 유시민은 이 책을 10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처음 읽으려 시도했을 때는 머리말 부분을 읽다가 졸려서 덮었다. 세 번 정도 다시 시도했으나 머리말을 넘어가기 힘들었다. 원문 자체가 만연체인 것 같은데, 번역 과정에서 어순이나 수식 관계가 복잡해져 난해한 구절이 많았다. 머리말을  포기하고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부터 읽기 시작했더니 한결 나았다. 책의 내용은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제3장 개별성-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 '제4장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제5장 현실 적용'의 순서인데, 5장은 요약 성격이라 실제 내용은 2, 3, 4장이었다. 각 장의 내용.. 2024. 12. 26.
설국/천우학(가와바다 야스나리) 언제 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는데 앞표지 여백에 '2학기 기말고사 2주 전 토요일'이라는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아마도 95년 12월.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래서 샀던가? 곰곰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건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일본 문학의 특징은 유미주의(唯美主義)지. 설국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풍경 묘사라든지..." 하며 얘기를 꺼냈고 친구들 간에 일본문학에 대해 꽤 진지하게 대화가 오갔다. 나는 일본문학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친구들의 박식함에 약간의 열등감을 느꼈다. 그래서 냉큼 이 책을 사긴 했지만 몇 장 읽다가 재미가 없어 책장에 꽂아두었고 눈 깜짝할 새 근 30년이 흘렀다. 책을 다시 들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막.. 2024. 12. 4.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책은 짧았다. 기차를 타고 어디 다녀오는 왕복 3시간 사이에 다 읽었다.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는 짧은 소개글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봤는데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스릴도 있고 선과 악, 삶과 죽음에 대한 소소한 성찰도 있었다. 작가의 플롯 구성능력이 좋은 것 같아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2024.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