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설국/천우학(가와바다 야스나리)

by 바쁜하루 2024. 12. 4.

언제 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는데 앞표지 여백에 '2학기 기말고사 2주 전 토요일'이라는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아마도 95년 12월.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래서 샀던가? 곰곰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건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일본 문학의 특징은 유미주의(唯美主義)지. 설국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풍경 묘사라든지..." 하며 얘기를 꺼냈고 친구들 간에 일본문학에 대해 꽤 진지하게 대화가 오갔다. 나는 일본문학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친구들의 박식함에 약간의 열등감을 느꼈다. 그래서 냉큼 이 책을 사긴 했지만 몇 장 읽다가 재미가 없어 책장에 꽂아두었고 눈 깜짝할 새 근 30년이 흘렀다.

책을 다시 들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문장도 쉽고 스토리도 술술 잘 읽혔다. 하지만 읽고 난 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 작가가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받았지?"였다. 익히 알려진 대로 문장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작가의 정신세계에 매료되기는 어려웠다.

설국에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온천 마을에서 알게 된 게이샤 고마꼬와 1년에 한 번 정도씩 만난다. 그는 가정이 있지만 해마다 고마꼬를 찾아가 외도를 즐기다 돌아간다. 고마꼬는 시마무라에게 몸과 순정을 바치며 사랑을 갈구하지만 시마무라는 시종일관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며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한편 그는 열차 안에서 안면이 있던 요오꼬라는 여성에게 관심이 가지만 고마꼬를 생각해서 스스로를 자제한다. 그러던 중 불의의 화재로 요오꼬가 사망한다.  

설국은 짧은 단편으로 1935년부터 부분 부분 발표되다가 1948년에 완결판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토리의 연결성이 부족하다. 1930년대 일본 게이샤 고마꼬의 삶은 2020년대 한국의 화류계 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밤새 여러 술자리를 오가며 몸이 상하도록 마시고, 연정을 바치는 남성은 엔조이만을 원하고, 포주의 족쇄에 매여 살다가 상품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림받는 삶. 작가는 무엇을 위해 이 소설을 썼을까? 사회고발을 위해 쓴 글로는 느껴지지 않았고,  화류계 여성에 대한 연민이 섞인 사사로운 추억담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나로서는, 이 소설에서 인간정신을 고양시키는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천우학은 내용이 정말 엽기적인데, 근친상간인 듯 근친상간 아닌 근친상간 같은 사랑이 주제랄까.

주인공 기꾸지의 작고한 부친은 친구의 미망인인 오오다 부인과 내연관계였다. 기꾸지의 어머니도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그냥 인정하고 살았다. 기꾸지의 부친과 모친이 모두 돌아가신 뒤 기꾸지는 아버지의 일시적 잠자리 상대였던 치키꼬로부터 유키꼬라는 여성을 소개받기 위한 차모임에 갔다가 오오다 부인과 그녀의 딸 후미꼬를 만난다. 기꾸지는 25세, 오오다 부인은 45세 정도,  후미꼬는 기꾸지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 맞선 상대인 유키꼬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야기는 오오다 모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작가는 오오다 부인이 너무나 순수한 애정으로 기꾸지와의 관계를 원한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설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욕망과 죄책감을 모두 상대 여성에게 투사함으로써 독자의 불편함을 감소시키려는 작가의 기교로 보인다. 기꾸지는 결국 둘째어머니 격인 오오다 부인과 동침하고 그 후 오오다 부인은 죄책감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모를 이유로 자살한다. 오오다 부인의 장례 이후 기꾸지와 후미꼬는 서로 묘한 연정을 느낀다. 후미꼬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질투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기꾸지와 관계를 가지게 되고 그 후 갑자기 기꾸지와 연락을 끊고 사라진다. 작가는 후미꼬 또한 자살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질적인 새어머니 그리고 새여동생과의 사랑이라는 금기를 소재로 했기에 읽기에 영 불편했지만 문학적 기법은 뛰어나다 싶었다. 후미꼬가 어머니의 연지자국이 묻은 찻잔을 깨뜨리는 행동을 통해 그녀 마음속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드러내 보이는 장면이나, 결국은 조연에 불과한 맞선 상대 유키꼬의 보자기에 그려져 있던 천우학을 굳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만 봐도 작가의 필력이 보통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은 뛰어난 글솜씨가 아닌 존경할 만한 작가정신에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0) 2024.12.26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0) 2024.11.18
고래(천명관)  (0) 2024.11.18
모든 삶은 흐른다(로랑스 드빌레르)  (0) 2024.07.26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0)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