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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편소설] 핫초코

by 바쁜하루 2021. 11. 17.

어린 아들은 머시 멜로우들로 장난을 쳤다.
"눈사람들이 산책을 갔어요... 들판을 가로질러 갔어요... "
넓은 식탁은 어느새 하얀 눈사람들의 모험 길이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머시 멜로우들을 달라고 하여 뜨거운 코코아 속에 넣었다.
스푼으로 휘휘 젓자 하얀 덩어리는 이내 녹기 시작했다.
아들은 놀란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눈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야?"
"녹고 있어."
"녹고 있다고?"
"응"
아들은 커다란 눈을 끔벅이다가, 입술을 씰룩씰룩하더니 금세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으웨... 눈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어..."
난 그 귀여운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아이를 안아 올리고 등을 토닥였다.
"음... 녹는다고 해도 없어지는 건 아니야."
아이는 서서히 울음을 그치고 약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안 없어져?"
"눈사람들은 이 코코아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들어간다고?"
"응. 눈사람들의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이 이 코코아 속에 녹아 있는 걸."
"정말?"
"그럼~!"
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핫초코를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처음 보는 갈색 음료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맛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이 머그컵만큼 커졌다.
"음~ 맛있다."
아이는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콤하지? 아까 그 눈사람들이 핫초코 속에 들어 있는 거야."
아이는 이미 내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며 처음 경험하는 핫초코의 달콤한 맛에 푹 빠져 있었다.
"사람은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아이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 누군가의 마음속에 달콤하게 남을 수 있는 거야."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희 엄마처럼 말이야..."
벽에 걸린 사진 속 어여쁜 아내가 우릴 보며 웃고 있었다.
핫초코의, 아늑하고 달콤한 향기가 거실을 가득 채운 어느 겨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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