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lian Barnes. 2011. The sense of an ending.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최세희 역. 다산책방. 2012.
완독일: 2020. 8. 3.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에서 소개한 적 있는 줄리언 반스의 대표작이다. '작가를 짓다'에 따르면 반스는 옥스퍼드 출신의 수재로 언어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소설 쓰기가 더 즐겁다는 이유로 변호사 대신 소설가의 길을 택한 천재형 작가이다. 줄곧 저널리즘 쪽에서 일해오며 명성을 쌓았는데, 30대 중반의 조금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한 것은 편집자 출신 아내의 권고 덕택이었다고 한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질 크나큰 행복의 시간을 고이 지켜드리고 싶은 까닭에 작품 내용 소개는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작가가 수 만 시간을 공들여 쌓은 탑을 나의 어줍잖은 감상문이 단숨에 무너뜨릴까 두렵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소설에 등장한 모든 이들이 바로 우리들처럼 그저 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책을 처음 읽는 동안 내 마음 속에는 불신과 분노와 우울함과 죄책감이 지옥의 죄수들처럼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댔으나,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엔 허탈함과 그리움만이 말없이 텅 빈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서 다시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불신과 분노와 우울함과 죄책감의 모든 문장들이 이해와 연민과 다정함과 용서의 별빛으로 변해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나자 소설 속 장면들이 가을 풀벌레 소리 가득한 추억처럼 내 마음의 밤하늘에 투명하게 아로새겨졌다.
소설 속에서 반스는 문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독자 또한, 시간을 거쳐 함께 형성되어 가는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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