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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간의 대지(생텍쥐페리)

by 바쁜하루 2020. 5. 8.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처음 읽었던 것은 3, 4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었다. 이 책을 구입한 동기는, 아마 다른 대부분의 사람도 마찬가지일거라 믿는데, 그가 "어린 왕자"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와 같은 가슴 설레이는 메타포와 감동을 기대한 까닭에 이 책은 처음엔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라는 인물의 열정적 삶과 순수한 철학이 아주 진솔하게 담겨 있어서 책장을 덮고 나면 따뜻한 여운이 남는다.  

  • 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 나는 또 그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속내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다. 병이나 돈, 집안 걱정거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속내 이야기는 그들이 갇혀 있는 우중충한 감옥의 벽을 보여주었다. 

  •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라는 부이니까. 우리는 오직 물질적인 부를 위해 일함으로써 스스로 감옥을 짓는다. 우리는 타버린 재나 다름없는 돈으로 우리 자신을 고독하게 가둔다. 삶의 가치가 깃든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살 수 없는 그 돈으로. ...(중략)... 메르모즈 같은 친구와의 우정, 함께 겪은 시련을 통해 영원히 맺어진 동료와의 우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법이다. 비행하던 그 밤, 그 밤 속에 빛나던 십만 개의 별들, 그 고요함, 몇 시간 동안 이어지던 그 절대적인 힘. 이런 것들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어려운 구간을 지난 후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 그 나무, 꽃, 여인, 미소. 새벽녘에 우리에게 막 주어진 생명으로 상큼하게 채색된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이 사소한 것들의 콘서트를 돈으로는 살 수 없다. 

  •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다. 그것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돌멩이 하나를 놓으면서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네.

  • 이윽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은 채 기억이 선사하는 매혹에 나 자신을 맡겼다. 어디엔가 검은 전나무와 보리수가 우거진 정원이 하나 있었고 내가 아끼던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이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설사 그 집이 여기서는 꿈의 구실밖에는 할 수가 없기에 내 몸을 뼛속까지 덥혀 주지도 나를 보호해 주지도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리하여 그 존재가 나의 밤을 가득 채워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이제 모래벌판에 불시착한 몸뚱이가 아니었다.

  • 아! 집이 경이로운 것은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 주거나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도, 우리를 위한 벽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우리 마음속에 그 아늑한 물건들이 천천히 쌓여 왔기 때문이다. 

  • 사막이 일견 공허와 침묵일 뿐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하루살이 애인에게는 자신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의 아주 소박한 마을조차 제 모습을 은밀히 감추듯이 말이다. 만약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전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그 마을의 전통과 관습과 대립 관계 속으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고향일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 하지만 이제 정복되지 않은 사막은 없다. 쥐비곶, 시스네로스, 푸에르토 캉사도, 사귀에텔함라, 도라, 스마라. --- 그 어디에도 이제 신비는 없다. 우리가 달려가던 지평선도 차례차례 사라졌다. 마치 따뜻한 손이라는 함정에 잡히면 제 빛깔을 잃어버리는 곤충들처럼. 

  • 그 말이 자네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씨앗에 싹이 트듯 그렇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그 말이 자네의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자네만이 유일한 재판관이다. 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지이니까. 

  • 인간에게 진리란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잠든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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