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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만들어진 우울증

by 바쁜하루 2012. 7. 24.


만들어진 우울증. 크리스토퍼 레인.

 

심리학자 출신의 저자가 정신의학계와 제약회사의 상혼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요약하자면, DSM-III가 만들어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을 비롯한 불안장애들이 명확한 근거나 충분한 합의없이 소수의 독단에 의해 진단기준이 정해졌고, 그 결과 병이라 부를 수 없는 개인의 성격(예를 들어 소심함)까지도 질환으로 분류되면서 제약회사의 수익만 늘려주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제약회사의 상업주의적 정책과 광고의 비도덕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어차피 기업의 속성이란게 이윤추구인 법이니 그리 놀라울 것은 없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항우울제를 만드는 회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니까...

 

그러나 DSM-III 제정과정에서 내향적 성격을 인격장애의 하나로 구성하려 했다는 에피소드는 흥미로왔다. 외향성이 중시되는 미국사회만의 현상이라는 저자의 통찰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처럼 인식되는 SSRI계통 약제들이 만성적이고 비가역적인 정서적 후유장애(아마도 tardive dyskinesia 같은 기전으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새겨들어볼 만 했다.

 

저자는 정신의학계의 독선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나는 읽는 내내 저자의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화법과 스피처 박사에 대한 인신모독적인 독설이 거북스러웠다. 뭐랄까... DSM-III를 주도한 악의 축 스피처 박사 때문에 선량하고 양심적인 심리학계가 몰락하게 되었다는 피해의식과 함께, DSM-III를 주도한 사람들의 의도를 뚜렷한 근거없이 나쁘게, 거의 망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는 아마 저자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며, 현재 심리학계에서 학술지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밖에 절반 분량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저자의 문체도 못마땅했다.

 

어쨌거나 이 쪽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직접 정신과약을 처방할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는 시간낭비일 수 있어 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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