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주말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으면 활동적인 아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못 본다. 하지만 날카로운 잔소리 대신 “여보, 시원한 아이스 밀크티 한 잔 타 줄까요?”하고 물어오면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내의 아이스 밀크티는 타피오카 펄은 들어있지 않지만 꿀을 듬뿍 넣어서 ‘공차’보다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한 달 쯤 전에도 내가 주말 내내 늘어져 있자 마침 집에 선물로 받은 홍차가 있으니 그걸로 타 주겠다며 한 봉지 꺼내왔다. 그런데 포장지를 뜯자마자 영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이건 과일향이 강하네. 밀크티는 아쌈 블랙이나 잉글리쉬 브랙퍼스트가 최고인데...” 그래서 집에 있던 다른 브랜드의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를 꺼내어 밀크티를 만들고 선물로 받은 홍차는 도로 넣어두었다. 과일향이 나는 홍차는 아무 것도 섞지 않고 그대로 마셔야 제 맛이라나.
어제 가족과 오랫만에 나들이를 다녀온 탓인가? 오늘 오후에 집에 있자니 피곤하고 졸려서 애프너눈 티를 한 잔 해야겠다 싶었다. 지난 번에 선물받은 홍차를 꺼내어보니 1837 TWG black tea라 적혀 있었다. 홍콩에 놀러갔을 때 백화점 한 켠에서 큰 카페 겸 매장을 본 기억이 나서 ‘홍콩 브랜드인가?’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싱가포르 브랜드였다. 면으로 된 삼각 주머니와 여러 가닥의 흰 실로 꼬아진 티백줄이 고풍스런 느낌을 주었다. 향은 과일향, 특히 딸기향이 강했고 홍차향은 그 속에 묻혀서 은근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따뜻한 차가 입 안을 가득 채운 후 목으로 넘어갈 땐 기분 좋은 은은함과 쌉싸름함이 느껴졌다. 왠지 여성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은데, 내 주위의 유일한 여성인 아내는 “홍차는 역시 아쌈이지!”하는 편인지라, 여성취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울지도...
한 잔 하고 나니 오후가 무척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주말마다 한 잔 씩 홀짝홀짝 즐기며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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