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첫사랑(이반 투르게네프)

바쁜하루 2020. 6. 20. 23:19

 

Ivan Turgenev. 1860. First love. [첫사랑]. 김학수 역. 문예출판사. 2006.

완독일: 2020. 6. 20.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첫사랑’의 소설 하면 황순원의 ‘소나기’를 꼽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알퐁스 도데의 ‘별’일 것이다. 몇 년 전에 문득 ‘소나기’처럼 순수한 감성에 젖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결말에 살짝 멘붕이 왔었다. 며칠 전 한 팟캐스트를 통해 헤밍웨이가 투르게네프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이하 내용은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소설을 읽을 계획이라면 다 읽은 후 재방문 하시기를)

두 번째 읽으며 느낀 점은 작가가 처음부터 아주 치밀하게 복선을 깔아 놓았다는 점이었다. 왜 지난번에 읽을 땐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은근하지만 명백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삼 느낀 것은 문장의 호흡이 유려하고, 묘사가 생동감 있으며 아름답다는 점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형태의 그리스 조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단 하나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은 40대인 아버지와 21살인 지나이다의 관계 그 자체였다. 그게 소설의 핵심 내용인데, 나의 도덕관이 그 둘의 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처음 읽었을 때는 영 얼떨떨한 느낌으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편히 바라보기는 쉽지 않지만 19세기 러시아의 시대상은 지금과는 달랐으리라 싶고(1833년은 안동 김 씨가 득세하던 조선 순조 때다), 이번에 읽어보니 아버지도 지나이다를 무척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 나름 애를 썼던 것처럼 보여서 처음 읽을 때와 같은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주인공과 함께 말을 타고 지나이다가 있는 주택으로 갔을 때 채찍으로 그녀를 때리는 장면에서, 초독 때는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므로 주인공의 아버지는 절대 용서해선 안될 천하의 몹쓸 놈이라는 생각만 들었으나, 이번에 다시 읽으며 보니 아버지 또한 지나이다에 대한 사랑과 후회로 번민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면서 화해와 용서로 그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채찍은 어디다 떨어뜨리셨어요?”
나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떨어뜨린 게 아니야. 버렸지.”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최후로, 아버지의 엄격한 얼굴의 윤곽이 얼마나 부드러운 인정과 연민의 정을 나타낼 수 있는가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제목 ‘첫사랑’은 주인공 블라디미르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이다의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첫사랑이요,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10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서 살아오다 20대 여성에게 완전히 마음을 뺏긴 주인공의 아버지 페트로비치의 사랑도 아마 첫사랑이었으리라.

이 소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던 두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은 죽음의 순간에 신 앞에서 용서를 구하며 두려워하는 죄 많고 나약한 인간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마무리된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이 가난한 노파의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지나이다의 최후가 연상되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고 싶어 졌다.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든 소설이라고 한다. 투르게네프가 이 소설을 출간한 나이가 소설 속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다는 점은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작가 본인이 그 나이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시절의 일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소설의 내용이 정말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경험이라면,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무의식 중에 자신의 분노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을지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아래의 대목은 블라디미르의 꿈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벨로브조로프는 무의식의 힘으로 변형된 블라디미르 본인의 상처와 분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밤, 나는 괴이하고도 무서운 꿈을 꾸었다. 나는 천장이 낮은 어두운 방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한 손에 채찍을 들고 서서 발을 쾅쾅 구르고 있었다. 한구석에는 지나이다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팔이 아니라 이마 위에 붉게 부풀어 오른 줄이 보였다. 두 사람 뒤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벨로브조로프가 몸을 일으키더니 창백한 입술을 놀려 분노에 찬 어조로 아버지를 위협했다.

아무쪼록 이 소설이 투르게네프 본인의 갈등과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