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어둠의 속(조셉 콘래드)

바쁜하루 2020. 6. 17. 17:03

 

Joseph Conrad. 1899. Heart of darkness. [어둠의 속]. 이덕형 역. 문예출판사. 2010. 

완독일: 2020. 6. 17.

바다가 보이는 항구 도시에서 자라난 까닭일까?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그렸던 "나는 어른이 되면..."이란 제목의 그림 속에는 배 한 척과 그 배를 조종하는 선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 꿈은 대통령이 되었다가, 과학자가 되었다가... 대학 입학이 되고, 취업이 되고, 결혼이 되어버렸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대할 때마다 까닭모를 설레임이 느껴지는 건 이미 잊혀진 어린 시절의 꿈 때문일까?

이 소설의 화자는 말로라는 선원이다. 그의 회상을 통한 액자식 구성으로 스토리는 진행되며, 아프리카 상아 해안에서부터 콩고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가 목도했던 식민 제국주의의 잔혹한 현실이 생생한 문체로 펼쳐진다.

모든 내용이 상상의 소산이겠거니... 하면 그럭저럭 읽을 수 있지만, 콘래드가 젊은 시절 실제로 콩고강을 오가는 증기선의 선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란 걸 생각하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책장이 몹시 무겁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고 플롯도 단순해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커츠라는 인물이다. 상아에 미쳐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침략하고, 학살한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앞에서는 묘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뭐랄까... 영웅적인 기질과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 (식민 제국주의라는) 열병에 걸려 미쳐버리게 되고, 결국은 죽게 되었다는 그런 비극적인 요소가 있달까? 아무튼 커츠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차가운 경멸과 동시에 따뜻한 온정이 뒤섞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식민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시대의 광기에 대해 분노하고 고발하면서도 그 속의 나약한 인간들을 감싸안는 연민의 정서가 있기에 이 소설이 오래토록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번역본마다 제목부터 많이 다르다(어둠의 속, 어둠의 심연, 암흑의 핵심). 그런만큼 어쩐지 원서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아마존 킨들에서 무료판 ebook을 하나 다운로드하여 두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어사전을 들추어가며 차근히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