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서머셋 모옴)
Somerset Maugham. 1915. Of human bondage. [인간의 굴레]. 조용만 역. 2011.
완독일: 2020. 6. 1.
'인간의 굴레'는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셋 모옴의 자전적 소설이다. 달과 6펜스는 대학생 때 읽었는데, 구체적인 줄거리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폴 고갱에 관한 얘기였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친구 L군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고 하니 그가 대뜸 "아, 서머셋 모옴! 인간의 굴레!"하며 외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읽을만한 책이 없나 싶어 리디북스 전자책과 패키지로 구입한 동서월드북 클래식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인간의 굴레'가 눈에 띄었을 때 이거다 싶어 냉큼 읽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이 L군의 덕택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필립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서른 즈음 결혼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매우 흥미롭게 묘사한다. 책을 읽기 전 독자평에서 무척 재미있다는 글들을 많이 보았으나 그래 봐야 고전소설이려니 했었다. 막상 책을 펴고 첫 1/5 정도는 지루하여 그만 읽을까 생각도 몇 번 했는데, 어느덧 청년기가 되어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밀드레드란 여성과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흥미진진한데,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무릎을 치고 공감하며 읽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제목이 왜 인간의 굴레인지 조금 알 듯 했다.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라는 책의 제목은 스피노자의 '에티카' 중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관하여'에서 따온 것이라 하는데,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정서]을 지배하거나 억제할 때에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감정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자기의 권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권리 아래 있으며 스스로 보다 좋은 것을 알면서도 보다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만큼 운명의 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져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스스로 마음을 돌리려 해도 돌릴 수 없음을, 끝끝내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 않음을 잘 알 것이기에, 이 제목이 이 소설에 얼마나 적절한 지 이해할 것이다.
인생을 페르시아 융단에 비유한 알레고리 또한 무척 인상적이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만드는 것이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한 장의 융단이 되어 있다는 뜻으로 모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마음에 드는 날실을 골라잡아 어떠한 무늬를 짜내든 그것이 곧 개인의 만족이다. 다만 그 속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완전하며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면,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고 자식을 낳고 빵을 얻기 위해 일하고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크론소의 인생을 돌아보며,
"행복이라든가 고통이라든가 그러한 것이 이제 무슨 문제랴. 그러한 것들은 그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함께 다만 무늬를 복잡 정교하게 하기 위해 끼어드는 요소이다....(중략)...설혹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무늬에 복잡성을 더하는 모티프 하나가 더 덧붙여진 것일 뿐이다. 그리고 삶의 종말이 가까이 왔을 때 비로소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예술품이라고나 할까?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라고는 자기 자신 뿐이며, 설령 죽음과 더불어 불시에 그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조금도 변함없다."
우리는 지나간 삶에 후회도 하고 불행 속에 한탄도 하지만 모옴은 '우리의 행동은 자기 선택 밖의 것이며, 인간의 삶이란 다만 한 조각 무늬를 만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인간 자유의지의 부재와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나로선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 소설 속에서 묘사된 필립의 인생, 특히 밀드레드와의 관계를 읽은 독자라면 작가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모옴은 1874년 생이다. 우리와는 100년 터울을 두고 살아간 사람인데, 이 소설은 문체나 구성에서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관이나 인간관도 21세기 나의 관점과 큰 차이가 없었다. 20세기 초의 유럽 사상과 문화가 지금 시대와 그만큼 비슷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속성이란 것이 시대를 초월해서 유사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예전에 읽었던 달과 6펜스를 통해 서머셋 모옴의 문화유전자(meme)가 이미 나의 정신 속에 이식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희곡작가로서의 경력 때문일까? 인물이나 상황의 묘사에서 보여주는 그의 탁월한 글솜씨에는 여러 번 감탄했다.
"프와네 교수는 루드 챌리스라는 단정치 못한 조그마한 영국 여자의 이젤 앞에 앉았다. 지친듯한 그러면서도 묘하게 정열적인 아름답고 까만 눈의, 금욕과 육욕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듯한 야윈 얼굴, 낡은 상아빛 같은 살결, 그 시절 번 존스의 영향을 받아서 첼시 근방의 젊은 여자들이 앞다퉈 애써 다듬던 몸맵시를 지닌 여자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 밤에는 거의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더위는 마치 어떤 물체이거나 한 것처럼 나무 그늘을 어슬렁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작가인 Somerset Maugham을 한글로 표기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내가 읽은 책의 번역자인 조용만 교수님은 '서머싯 몸'이라고 표기를 하셨으나, 시중의 다른 책들은 '서머셋 몸' 혹은 '서머셋 모옴'이라고 표기해서 어느 쪽이 정확한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참고해 보니 외국인의 이름은 그의 고향에서 사용되는 실제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이 정확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국인들의 Somerset Maugham 발음을 검색해 본 결과 '서머셋 모옴'이 가장 정확하다는 결론을 얻고 블로그에서는 그렇게 표기를 했다. (참고 영상: youtu.be/p_7XoZ4ErAE, 00:05-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