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난 영 지루해서 못 읽겠더라.”
몇 년 전 이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을 때 친구 L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푸념하듯이 덧붙이기를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나를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
하고 말했다.
내가 의아한 듯 쳐다보자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을 중간에 멈출 수가 있냐고 하더라.”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어 L은 아내와 종종 벌어지는 언쟁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는 친구의 책에 대한 짧은 논평(지독히 지루함)이 실은 결혼 생활에 대한 것임을 눈치채고 책에 대해선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기회가 닿지 않아서인지 초판이 발행된 지 거의 10년이 가까워지도록 이 책을 보지 않다가 최근에야 읽었다.
내 개인적인 소감은… 친구 L에게는 미안하게도, 그의 아내 말처럼 처음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너무 흥미로왔다. 공리주의에서 발생하는 여러 윤리적 난제들과 자유주의의 한계점들, 그리고 결국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회귀하는 논리적 귀결이 정말 흥미진진하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도 상세했다. 괜히 하버드 최고의 명강의라 소문난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하나의 이론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며 생각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의 강의실 구석에 앉아 청강하는 기분이랄까…
다만 샌델 교수가 최종적으로 선호하는 공동선의 정의란게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주관적인 것이 아닐까 싶고,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정의에 관한 일치된 결론을 얻기는 결국 불가능한 것 아닐까 싶었다. 말하자면 “기존에 사람들이 말해온 정의는 완벽하지 않다”는 걸 훌륭하게 입증했지만 그렇다고 정의(justice)의 완벽한 정의(definition)를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런 결론이었다. 아니면 샌델 교수님의 깊은 뜻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L은 부인과 전보다는 잘 지내는 듯 하다. 다음에 만나면 이 책에 대한 소감도 혹시 바뀌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